내게 '독서'의 기억은 어린시절 피아노학원의 낡은 소파에서 읽던 것들로 회상된다. 레슨 전이나 학원차를 기다릴 때 남는 시간들을 책을 읽으며 보냈다. 모짜르트, 베토벤, 바흐 등 서양 음악가들의 생애를 다룬 만화책이나 복잡미묘한 그림 속에서 새로운 문양을 볼 수 있는 매직아이 모음책, 윌리를 찾아라 같은 것들이었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세계명작 만화판도 있었는데 그 때 접했던 책이 바로 '폭풍의언덕'이다. 학원을 다니는 동안 그 책은 정말 여러번 다시 볼 정도로 좋아했다. 기억나는 장면으로는 히스클리프가 힌들리에게 당하는 장면, 폭풍우 속의 Wuthering Heights, 울고있는 캐서린 정도였는데, 무튼, 슬프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기억돼서 9~12살 무렵의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 소설의 비극성이나 복수의 theme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번 학기 18, 19세기 영소설이라는 과목에서 이 작품을 다루었다. 처음 커리큘럼을 대했을 때 얼마나 기대가 되고 기쁘던지. 이 수업 이후 폭풍의 언덕은 '좋아하는 작품'에서 '내 생에 최고의 소설'로 그 가치가 격상되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무던히도 많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그들의 관계, 그리고 자식세대와의 비교대조해서 생각해 볼 때 정말 흥미로웠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불타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관계이고 서로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다.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만을 볼 때 그들의 사랑은 눈물겨울 정도이다. 이는 캐서린이 에드거와 결혼을 결심한 후 넬리에게 토로하는 속마음이자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사이다.
Wuthering Heights, a norton critical edition, fourth edition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에 있는 거야. (사랑의 파괴성)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자신은 '하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분리되었을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그에 대한 모습은 캐서린이 죽었을 때 괴로워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히스클리프 역시 캐서린에 대한 사랑의 모습이 심하게는 광狂적으로 보이며 격렬한, 시공을 초월한 모습이다.
“Why, she's aliar to the end! Where is she? Not there —not in heaven— not perished— where? Oh! you said you cared nothing for my sufferings! And I pray on prayer— I repeat it till my tongue stiffens—Catherine Earnshaw, may you not rest, as long as I am living! You said I killed you—haunt me, then! The murdered do haunt their murderes, I believe—I know that ghosts have wandered on earth. Be with me always—take any form—drive me mad! only do not leane me in this abyss, where I cannot find you! Oh, God! it is unutterable! I cannot live without my life! I cannot live without my soul!"
Wuthering Heights, a norton critical edition, fourth edition
캐서린이 죽었을 때 히스클리프의 대사. 그 역시 캐서린이 없는 세상은 지옥일 뿐이고 그녀와 단절된 삶을 매우 고통스러워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히스클리프의 대사가 더 마음아프게 느껴지는 건, 사랑하는 이를 세상에서 떠나보냈을 때 그 슬픔 자체를 느끼기보다 그녀에게 유령이 되어서라도 자신과 있어달라고 강하게 말하는 모습이 제 3자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히스클리프의 잔인함과 잔혹성에 반해 이와 같이 '사랑'에 미쳐있는 모습을 보면 선/악 구분도 모호해질 뿐만 아니라 히스클리프에게 연민의 감정까지 일어난다. 그는 작품 말미로 가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짓지 못하며 점차 죽음에 가까워진다.
I looked round impatiently—I felt her by me—I could almost see her, and yet I could not! I ought to have sweat blood then, from the anguish of my yearning, from the fervour of my suppications to have but one glimpse! I had not one. She showed herself, as she often was in life, a devil to me! And, since then, sometimes more, and sometimes less, I've been the sport of that intolerable torture! Infernal—keeping my nerves at such a stretch, that, if they had not resembled catgut, they would, long ago, have relaxed to the feebleness of Linton's.
현실과 상반되는, 유령의 존재를 느끼고 -물론 보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힘들어하며 파괴된 가부장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여튼,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단순히 외부적인 모습만을 볼 때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연인의 모습이지만 그것은 소꿉친구 때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이 그대로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대로 옮겨 간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이해와 노력은 필수적인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그 관계가 온전히 유지되기는 힘들다. 그런 면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 소유의 개념으로 서로에게 받아들여진 것이기에 결국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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